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 저출산 한국의 자화상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 저출산 한국의 자화상

음,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사실은 말이다,

나는 한때 아이를 정말,

간절히 원했던 사람이다.

손톱만 한 아기가

내 품에 안겨 곤히 잠든 모습을 상상하면,

가슴 한구석이

따뜻한 물로 가득 차오르는 듯했지.

그게 언제였더라…

아마 서른을 갓 넘겼을 무렵이었을 거야.

친구들은 하나둘 결혼하고,

SNS 피드에는

앙증맞은 아기 사진들이 넘쳐났다.

‘나도 언젠가는 저런 행복을 누릴 수 있겠지?’

막연한 기대감 같은 거였지, 뭐.

그런데 말이다,

그 막연한 기대감은

어느새 차가운 현실의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정말이지, 한순간에 말이야.

그때가 스물아홉,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친구와

미래를 그리던 때였다.

작은 오피스텔이라도 얻어서

둘이 오순도순 살면 좋겠다고,

그러다 아이가 생기면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면 된다고,

참 순진하게도 생각했었지.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서울의 집값은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닿을 수 없는 저 멀리 있었다.

아니, 서울이 아니더라도

변변한 전셋집 하나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어.

매일 밤,

컴퓨터 앞에 앉아

부동산 앱을 들여다보며

한숨만 쉬었던 기억이 난다.

전세 대출은 턱없이 부족했고,

월세는 우리 둘의 월급을

절반 이상 갉아먹을 게 뻔했다.

‘이러다간 평생 빚만 갚다 끝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지.

그때부터였을까.

아이를 낳는다는 것이

점점 더 비현실적인 꿈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게.

아니, 꿈이라기보다는

어쩌면 ‘사치’처럼 느껴졌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살 집도 없는데,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는 어디서 자라야 할까.

좁은 방 한 칸에서

온 가족이 부대끼며 살아야 할까.

아니면,

우리가 꿈꾸던 삶을 포기하고

더 외곽으로, 더 외곽으로 밀려나야 할까.

생각해보니,

집 문제만 있는 게 아니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들어갈 돈이 한두 푼이 아니잖아.

기저귀 값, 분유 값은 기본이고,

나중에 어린이집, 유치원, 학원비…

아,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나는 그때

작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월급이 넉넉한 편은 아니었다.

남자친구도 마찬가지였고.

둘이 벌어도 빠듯한데,

아이가 생기면

그야말로 ‘파산’이겠구나 싶었지.

게다가,

나는 내 커리어에 대한 욕심도 있었다.

어렵게 들어간 회사였고,

이제 막 자리를 잡아가던 참이었다.

그런데 아이를 낳으면

분명 경력 단절이 될 게 뻔했어.

회사 분위기도 그랬고,

주변 선배들만 봐도 그랬으니까.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지.’

‘애 낳고 나면 다 그렇게 되는 거야.’

그런 말들이

귓가에 맴돌았다.

나는 내 이름 석 자를 잃고,

누구의 엄마로만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

물론, 엄마라는 역할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는 건 알지만,

나는 ‘나’로도 살고 싶었거든.

어느 날 밤,

남자친구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의 미래에 대해,

그리고 아이에 대해.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나는 지금 아이를 낳을 자신이 없어.

우리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아.”

남자친구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빛에도

나와 같은 불안감과 막막함이 서려 있었다.

우리는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었다.

창밖은 이미 캄캄했고,

도시의 불빛만이

우리의 초라한 현실을 비추는 듯했다.

그때였다.

우리가 아이를 갖지 않기로,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지금은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잠정적으로 결론 내린 순간이.

마음이 너무 아팠지만,

동시에 어쩐지 홀가분하기도 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한,

그런 복잡한 감정이었지.

그날 이후,

나는 저출산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뉴스에서 출생률이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그게 단순히 숫자가 아니라

나와 같은 수많은 사람들의

고민과 좌절이 담긴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어쩌면,

나의 이 개인적인 경험이

이 책을 쓰게 된

가장 큰 이유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나는 몰랐지.

나의 작은 고민이

이토록 거대한 사회 문제의

한 조각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조각들이 모여

지금의 ‘한국’이라는 그림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1장에서 이야기했듯이,

나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아니, 낳을 수 없다고

잠정적으로 결론 내렸다.

그때는 그게 그저

나와 남자친구,

우리 둘만의 문제인 줄 알았다.

우리가 좀 더 노력하면,

우리가 좀 더 벌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말이다,

시간이 흐르고

주변을 둘러보니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아이를 낳고 싶어도 낳지 못하는,

혹은 아예 낳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젊은이들이 태반이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내 개인적인 고민이

어쩌면 우리 사회 전체의

거대한 그림자일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예감이 들기 시작한 게.

뉴스에서는 연일

‘역대 최저 출생률’이라는

암울한 소식이 들려왔다.

합계출산율 0.7명대.

음, 이게 대체 무슨 의미일까.

숫자만으로는 잘 와닿지 않았다.

그저 ‘심각하다’는 말만 되뇌일 뿐이었지.

하지만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니,

그 숫자는 단순히 통계가 아니었다.

그건 말이다,

우리 동네 놀이터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점점 희미해져 가는 풍경이었다.

내가 어릴 적 북적였던

골목 어귀의 유치원이

어느새 문을 닫고

다른 가게로 바뀌어 버린 모습이었다.

초등학교는 학생 수가 줄어

통폐합된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왔고,

아파트 단지에는

젊은 부부보다

나이 든 어르신들만 가득한 듯했다.

아, 정말이지,

아이 울음소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지는 순간들이었다.

이게 다 그 숫자들이 말해주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었던 거지.

왜 이렇게 된 걸까.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내 경험이 그랬으니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돈’ 문제였다.

친구들과 만나면

늘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야, 애 하나 키우는 데

얼마나 드는지 알아?

그냥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니까.”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이집, 유치원, 학원비는 물론이고,

옷, 장난감, 책, 먹을거리…

정말이지 끝이 없었다.

어떤 친구는 아이가 아파서

병원비로 한 달 월급을 다 날렸다고

한숨을 쉬기도 했다.

나는 생각했다.

우리가 아이에게

최소한의 것만 해줘도

이렇게 돈이 많이 드는데,

만약 내가 아이를 낳는다면

과연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아니, 감당할 수 없었다.

그건 너무나도 명확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집’ 문제.

이건 뭐, 말할 것도 없지.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은

그야말로 ‘꿈’이었다.

전세 보증금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월세는 월급의 절반을 훌쩍 넘겼다.

“애 키우려면 방 세 칸은 있어야지.”

“그래도 마당 있는 집이 좋지 않겠어?”

주변의 그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방 한 칸도 겨우 얻는 판에,

무슨 방 세 칸이고 마당인가.

아이에게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현실은 그 마음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또 다른 문제는 ‘경력 단절’이었다.

특히 여성들에게는

이 문제가 정말이지 치명적이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회사를 그만두는 게 당연시되는 분위기.

‘잠깐 쉬었다가 다시 나오면 되지.’

다들 그렇게 말했지만,

한번 끊긴 경력은

다시 이어가기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웠다.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기도 힘들고,

구하더라도 예전만큼의 대우를 받기란 더더욱 힘들었다.

내 주변에도 그런 친구들이 많았다.

능력 있고 똑똑한 친구들이었는데,

아이를 낳고 나서는

어쩔 수 없이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만 돌봐야 했다.

가끔 만나면

“나도 다시 일하고 싶다.”

“내 이름으로 불리고 싶어.”

그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들의 눈빛에는

자신을 잃어버린 듯한

공허함이 서려 있었거든.

나는 생각했다.

내가 만약 아이를 낳는다면,

나도 저렇게 될까.

내 꿈과 열정은

모두 사라지고,

오로지 ‘엄마’라는 이름으로만

살아가야 할까.

물론 엄마라는 역할이

세상에서 가장 숭고하고 아름답다는 건 알지만,

나는 ‘나’를 잃고 싶지 않았다.

내 커리어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내 이름으로 살아가고 싶었다.

이런 고민들은 비단

나와 내 친구들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사회 전반에 걸쳐

젊은 세대들이 느끼는

공통적인 절망감이자

현실의 벽이었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더 이상 ‘축복’이 아니라

‘희생’과 ‘포기’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듯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참 많은 것을 포기하며 살고 있었다.

내 집 마련의 꿈,

안정적인 직업,

개인의 여가와 취미,

심지어는 결혼 자체도

포기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N포 세대’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그리고 그 정점에

‘출산 포기’가 있었던 거지.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것이

정말 우리 개인의 문제일까.

우리가 게을러서,

우리가 노력이 부족해서,

우리가 욕심이 많아서

아이를 낳지 않는 걸까.

아니, 그렇지 않았다.

이건 분명히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였다.

개인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

그 벽 앞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좌절하고 포기하고 있었다.

아이 울음소리가 사라져 가는 한국.

이건 단순히 인구 감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건 우리 사회의 활력이 사라지고,

미래가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는

아주 선명한 경고등이었다.

나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점점 더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 깨달음은

나를 가만히 있게 두지 않았다.

2장에서 내가 느꼈던 감정은,

음, 뭐랄까.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는 듯한

무력감 같은 거였다.

저출산이라는 파도가

나를 집어삼키는 것만 같았지.

개인의 노력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너무나도 거대한 문제 앞에서

나는 그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말이다,

절망감 속에서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을까?’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숨만 쉬고 있을 수는 없잖아.’

그런 작은 반항심 같은 거였다.

어쩌면,

그게 나의 첫 번째 깨달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동안

저출산 문제를

누구의 ‘잘못’으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정부의 잘못,

사회의 잘못,

혹은 아이를 낳지 않는 개인들의 잘못.

어쩌면 나 자신조차도

‘내가 능력이 없어서’라고

자책했던 부분도 있었을 거야.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건 너무나도 단순한 시각이었다.

이 문제는 말이다,

그렇게 간단하게

누구 하나의 탓으로 돌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마치 거대한 실타래처럼

이리저리 얽히고설킨

복잡한 문제였던 거지.

높은 집값,

치솟는 교육비,

불안정한 일자리,

여전히 남아있는 성차별적인 문화,

그리고 아이를 낳으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감까지.

이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지금의 저출산 현상을 만들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건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모두의 문제’였다.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던 거지.

나는 문득,

뉴스에서 보던 통계 숫자 뒤에 숨겨진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0.7명이라는 숫자가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아이를 간절히 원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포기해야 했던

나와 같은 이들의 눈물이었고,

아이를 낳고도

홀로 고군분투하며

힘겨워하는 부모들의 한숨이었다.

그리고,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심한 젊은이들의

씁쓸한 미소였다.

아, 정말이지,

그 숫자는

너무나도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그저 숫자에만 매몰되어

그 뒤에 숨겨진

인간적인 고통과 고민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게 나의 두 번째 깨달음이었다.

저출산 문제는

결국 ‘사람’의 이야기였다.

통계와 정책 이전에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봐야 하는 문제였던 거지.

그럼,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거대한 문제 앞에서

나는 여전히 작은 존재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일이라도 해보자.’

그게 무엇이 될지는 몰랐지만,

일단 시작해야 한다는

막연한 의지가 생겼다.

어쩌면,

그 시작은

나의 시선을 바꾸는 것부터일지도 모른다.

세상을 비난하고

절망하는 대신,

문제를 좀 더 깊이 이해하고

나름대로의 답을 찾아보려는 노력.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첫 번째 발걸음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주변 사람들과

저출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친구들에게, 가족들에게,

심지어는 회사 동료들에게도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요즘 아이 낳는 거 어떻게 생각해?”

“혹시 아이 때문에 고민하는 거 있어?”

다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이 문제와 씨름하고 있었던 거지.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또 다른 깨달음을 얻었다.

이 문제는

혼자서 끙끙 앓을 문제가 아니었다.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하는 문제였다.

그래야만

아주 작은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이 깨달음이

당장 저출산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더 이상

무력감에 빠져 있지 않게 되었다.

절망 속에서

아주 작은 희망의 불씨를 발견한 듯했다.

그 불씨가

언젠가는 작은 불꽃이 되고,

더 나아가서는

어둠을 밝히는

커다란 불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막연한 기대를 품게 되었다.

이것이 나의 첫 번째 깨달음이었다.

문제는 거대하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고,

그 이야기를 듣고

함께 고민하는 것부터가

변화의 시작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시작은

나 자신으로부터 비롯될 수 있다는 것.

나는 이제

이 복잡한 문제 속으로

좀 더 깊이 들어가 볼 용기가 생겼다.

3장에서 나는,

저출산 문제가

단순히 누구 하나의 잘못이 아니라

‘모두의 문제’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이

나에게 작은 희망의 불씨를 주었다고도 했지.

음, 그런데 말이다,

그건 정말이지

아주 잠시뿐이었다.

막상 그 문제 속으로

한 발짝 더 깊이 들어가려 하니,

눈앞에 펼쳐진 것은

희망의 불씨가 아니라

끝없이 얽히고설킨

거대한 미로였다.

알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더 어려웠다.

아니, 더 혼란스러웠다고 하는 게 맞겠다.

마치 안개가 자욱한 숲에 들어선 듯,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이 옳은 길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가장 먼저 나를 괴롭힌 것은,

나의 개인적인 선택에 대한

주변의 시선이었다.

내가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는 것을

알게 된 몇몇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혹은 은근히

나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젊은 사람이 왜 애를 안 낳아?”

“나중에 후회할 걸? 늙어서 외로워.”

“요즘 애들은 너무 이기적이야. 자기만 편하려고 해.”

그런 말들이

비수처럼 날아와 박혔다.

때로는 가족들의 걱정 어린 시선이

더 큰 압박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우리 집안 대는 누가 잇니?”

“친구들은 다 손주 재롱 보는데, 너희는 언제쯤…”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나의 선택을 끊임없이 흔들었다.

나는 애써 침착하려 했지만,

속으로는 끊임없이 되물었다.

‘내가 정말 이기적인 걸까?’

‘나중에 정말 후회하게 될까?’

분명히 나름의 이유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인데,

왜 이렇게 죄책감이 드는 걸까.

사회적 통념이라는 것이

이토록 무서운 것이었나 싶었다.

내면에서는

‘나는 나만의 삶을 살 권리가 있어!’라고 외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래도 내가 너무 무책임한가?’ 하는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였다.

이런 갈등 속에서

나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

그리고 저출산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보려 할수록

더 큰 좌절감에 빠졌다.

정부에서는 온갖 정책을 내놓는다고 했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하나같이 현실과는 동떨어진

탁상공론 같았다.

출산 장려금 몇 푼,

보육 시설 확충…

물론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그것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리 만무했다.

높은 집값은 여전했고,

아이 하나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여성들의 경력 단절은

여전히 심각한 문제였고,

남성들의 육아 참여는

여전히 ‘돕는’ 개념에 머물러 있었다.

‘이게 최선인가?’

‘정말 답이 없는 문제인가?’

그런 질문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답답했다.

정말이지, 속이 터질 것 같았다.

어떤 이들은

“결국 다 돈 문제 아니겠어?”라고 말했다.

또 어떤 이들은

“여성들이 너무 이기적이라 그래!”라고 비난했다.

반대로 “남자들이 육아를 안 하니까 그렇지!”라고

분노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나는 이 모든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누구의 말이 맞는 걸까.

어쩌면 다 맞는 말인데,

동시에 다 틀린 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너무나도 복합적이었다.

경제적인 문제,

젠더 문제,

문화적인 문제,

심지어는 개인의 가치관 문제까지.

이 모든 것들이

실타래처럼 얽히고설켜 있었다.

하나를 풀면 다른 하나가 엉키는 듯했다.

나는 이 거대한 실타래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때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그냥 나 하나 잘 살면 되지,

뭐 이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나.’

그런 유혹에 빠지기도 했지.

하지만, 음,

그럴 수는 없었다.

한번 시작된 고민은

쉽게 멈춰지지 않았다.

밤늦게까지

관련 기사를 찾아보고,

책을 읽고,

다큐멘터리를 봤다.

알면 알수록

더 큰 혼란에 빠졌지만,

동시에

이 문제의 본질에

점점 더 가까워지는 듯한

묘한 느낌도 들었다.

나는 이 혼란 속에서

나 자신을 끊임없이 들여다봤다.

내가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결정이

정말 후회 없는 선택일까.

아니면,

사회적 압박에 대한

나의 방어 기제였을까.

죄책감과 합리화 사이에서

나는 줄타기를 하는 듯했다.

이 과정은 정말이지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동시에,

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나는 깨달았다.

이 문제는

명확한 정답이 없는 문제라는 것을.

누가 옳고 그르다고

단정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 혼란 속에서

나만의 길을 찾아야 했다.

나만의 답을 찾아야 했다.

비록 그 답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납득할 만한 답을 말이다.

이 깊은 갈등과 혼란 속에서,

나는 문득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졌다.

나와는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

나와는 다른 고민을 하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어쩌면 내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막연한 기대감이 생겼다.

그것이 바로

내가 이 혼란스러운 미로를 헤쳐나가기 위한

다음 발걸음이었다.

4장에서 나는,

저출산이라는 거대한 미로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듯했다.

나 혼자 아무리 고민해봐도

답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더 큰 혼란에 빠져들었지.

그때 문득,

‘나만의 생각으로는 안 되겠다’는

절실함이 찾아왔다.

그래, 나 자신을 둘러싼

이 좁은 울타리 밖으로 나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했다.

나와는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

나와는 다른 고민을 하는 사람들.

그들의 목소리 속에

어쩌면 내가 찾던 실마리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 같은 거였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대학 동기 부부의 집이었다.

그들은 나와 비슷한 시기에 결혼했지만,

과감하게도(?) 아이를 낳기로 결정했다.

나는 그들이 부럽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대체 무슨 용기로 저런 결정을 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가득했다.

그들의 집은

아이의 흔적으로 가득했다.

거실에는 알록달록한 장난감이 널려 있었고,

벽에는 아이가 그린 그림이 붙어 있었다.

친구는 아이를 품에 안고

연신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말이다,

그 미소 뒤에는

깊은 피로감이 숨어 있는 듯했다.

“야, 정말이지,

애 하나 키우는 게 이렇게 힘든 줄 몰랐어.”

친구는 아이가 잠든 틈을 타

맥주 한 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돈은 돈대로 깨지고…

솔직히 말하면,

가끔은 후회되기도 해.”

그녀의 솔직한 고백에

나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말이야,

얘가 방긋 웃어주면

그 모든 힘든 게

눈 녹듯 사라진다니까.

이 맛에 애 키우는구나 싶어.”

남편인 동기도 거들었다.

“솔직히 집 사는 건 포기했어.

지금은 그냥 월세 살면서

애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어.

둘이 벌어도 빠듯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되겠지 싶어.”

그들의 이야기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고 고단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나는 분명히 ‘행복’을 보았다.

그것은 내가 포기했던,

혹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형태의 행복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내 안의

‘아이를 낳으면 불행해진다’는

막연한 편견이

조금씩 깨지는 것을 느꼈다.

다음으로 만난 사람은,

오랫동안 비혼주의를 고수해온

나의 절친한 친구였다.

그 친구는

결혼도, 출산도

자신의 삶에 불필요하다고

늘 이야기해왔다.

나는 그 친구의 삶을 존중했지만,

한편으로는

‘저렇게 혼자 살면 외롭지 않을까?’ 하는

걱정 아닌 걱정을 하기도 했다.

“난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 거야.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고,

내 시간과 돈을

온전히 나를 위해 쓸 거야.”

친구는 당당하게 말했다.

그녀는 주말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러 다녔고,

해외여행도 자주 떠났다.

그녀의 삶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풍요로워 보였다.

“솔직히 말하면,

주변에서 ‘결혼 안 하냐’, ‘애 안 낳냐’고 물어볼 때마다

좀 짜증 나긴 해.

내 삶인데 왜 남들이 이래라저래라 하는지 모르겠어.”

그녀의 말에 나는 공감했다.

나 역시 비슷한 시선을 겪었으니까.

그녀는 덧붙였다.

“나는 내가 행복하면 그걸로 된 거야.

애 낳고 힘들게 사는 것보다

혼자서 행복하게 사는 게

나에게는 더 중요해.”

그녀의 이야기는

나에게 ‘행복의 기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아이를 낳는 것만이

행복의 유일한 길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각자의 삶의 방식이

모두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어느 날은

우연히 동네 경로당 앞에서

나이 지긋한 할머니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할머니는 손주 자랑을 늘어놓으시다가

문득 한숨을 쉬셨다.

“요즘 젊은 것들은 왜 애를 안 낳으려는지 몰라.

다들 자기만 편하려고 해.”

나는 순간 움찔했지만,

애써 침착하게 물었다.

“할머니, 예전에는 어떠셨어요?

아이 키우는 게 힘드시지 않으셨어요?”

할머니는 잠시 먼 산을 바라보시더니

말씀하셨다.

“힘들었지, 암.

그때는 먹고살기도 힘들었어.

그래도 다들 애 낳고 키웠지.

그게 당연한 줄 알았으니까.

요즘은 세상이 너무 각박해져서 그런가…”

할머니의 말씀은

세대 간의 깊은 간극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들에게는 ‘당연했던 것’이

우리에게는 ‘선택’이 되었고,

때로는 ‘불가능한 것’이 되어버린 현실.

나는 할머니의 말씀 속에서

과거와 현재의 사회적, 문화적 차이가

저출산 문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회사에서 육아휴직을 쓰고 돌아온

남자 동료와도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과감하게 육아휴직을 신청했다고 했다.

“솔직히 회사에서 눈치도 보이고,

경력에도 마이너스가 될까 봐 걱정했지.

그래도 아내가 너무 힘들어해서

내가 나서야겠다고 생각했어.”

그의 이야기는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남자가 육아휴직을?’

나는 무의식중에

남성 육아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육아휴직 기간 동안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면서

여성들이 겪는 고충을

몸소 체험했다고 했다.

“정말이지,

육아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

아내한테 너무 미안했어.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남성 육아에 대한 인식이

아직 너무 부족하다는 걸 느꼈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독박 육아’가

단순히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남성들의 육아 참여를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모든 만남들을 통해

나는 저출산 문제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다층적인 문제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단순히 돈 문제만도 아니었고,

여성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각자의 삶의 맥락에서

저출산은 다르게 해석되고,

다르게 경험되고 있었다.

나는 이 모든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나의 고정관념들이

하나둘씩 깨지는 것을 느꼈다.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이기적인 행동이다’라는 편견,

‘남자는 돈만 벌어오면 된다’는 편견,

‘옛날에는 다 잘 키웠다’는 편견…

이 모든 편견들이

타인의 삶 앞에서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었나 싶었다.

물론, 이 만남들이

저출산 문제의 명확한 해답을

가져다주지는 않았다.

여전히 답은 모호했고,

문제는 거대했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단정 짓기보다는,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마음이 생겼다.

세상을 좀 더 넓은 시야로 바라보게 되었고,

다양한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타인과의 만남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저출산이라는 문제를

단순한 통계나 정책의 문제가 아닌,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시각은

나를 다음 단계로 이끌었다.

5장에서 나는,

정말이지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사는 젊은 부부,

비혼과 비출산을 선택한 당당한 친구,

과거의 시선으로 지금을 바라보는 할머니,

그리고 용기 있게 육아휴직을 선택한 남자 동료까지.

그들의 이야기는

내 안에 굳게 박혀 있던

수많은 고정관념들을

하나둘씩 흔들어 놓았다.

마치 안개가 자욱했던 숲에

햇살이 비치면서

길이 조금씩 선명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음, 그래,

그것은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결정적인 순간들이었다.

나는 그동안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어쩌면 ‘이기적인 선택’일지도 모른다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나의 고민이 그랬듯이,

비혼이나 비출산을 선택한 친구의 삶 또한

결코 가볍지 않은,

깊은 성찰과 고뇌 끝에 내린 결정임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단순히 ‘편하려고’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만의 가치관과 삶의 방향을 존중하며,

사회적 시선과 압박 속에서도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가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깨달았다.

아이를 낳든 낳지 않든,

그것은 온전히 개인의 선택이며,

그 어떤 선택도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

우리 사회가

다양한 삶의 방식을 포용하고 존중할 때,

비로소 저출산 문제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시작될 수 있음을 말이다.

그리고 ‘돈’ 문제.

물론 경제적 어려움은

아이를 낳지 않게 만드는

가장 큰 현실적인 벽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친구 부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돈 이상의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부족한 형편에도 불구하고

아이에게서 얻는 행복을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단순히 돈을 더 많이 준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아니, 그렇지 않았다.

불안정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내 아이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아이를 낳았을 때

부모로서 감수해야 할

엄청난 희생과 포기에 대한 부담감.

이 모든 것들이

돈으로 환원될 수 없는

심리적, 사회문화적 요인들이었다.

저출산은 단순히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삶의 질’과 ‘행복’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었다.

가장 크게 시각이 바뀐 부분은

바로 ‘성 역할’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무의식중에

‘육아는 엄마의 몫’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육아휴직을 쓴 남자 동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육아의 고단함을

여성들 못지않게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남성 육아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기업 문화의 부족함이

얼마나 큰 장벽으로 작용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독박 육아’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남성들의 육아 참여를 가로막고,

결과적으로는

여성들의 경력 단절을 심화시키는

사회 전체의 문제였다.

이제는 남녀를 불문하고

육아와 가사가

‘공동의 책임’이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뿌리내려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기업들도, 정부도,

이러한 변화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했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세대 간 공감’의 중요성을 생각했다.

할머니 세대에게는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당연한’ 삶의 과정이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개인의 선택권이 넓지 않았고,

사회경제적 환경도 달랐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는

전혀 다른 현실에 직면해 있다.

과거의 잣대로 현재를 재단하고

비난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가치관의 차이를 인정하며

솔직하게 대화하는 것.

그것이 세대 간의 간극을 줄이고,

함께 저출산 문제를

고민할 수 있는

첫걸음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 모든 만남과 성찰을 통해

나는 저출산 문제를

훨씬 더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절망하는 대신,

복합적인 시각으로 문제를 이해하고,

공감과 존중을 바탕으로

함께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강한 의지가 생겼다.

문제는 거대하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삶과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듣고

이해하려는 노력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시작점이었다.

이 새로운 시각은

나를 가만히 있게 두지 않았다.

단순히 문제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

이제는 무엇이든

작은 행동이라도 해봐야겠다는

강한 동기가 생겼다.

비록 내가 거대한 사회를

한순간에 바꿀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나 자신부터,

그리고 내 주변부터

작은 변화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막연하지만

확고한 믿음이 생겼다.

이것이 바로

나의 ‘변화의 시작’이었다.

6장에서 나는,

저출산이라는 거대한 문제 앞에서

더 이상 방관하지 않겠다고,

나만의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무엇이든 해보겠다고 다짐했다.

음, 그런데 말이다,

막상 ‘무엇을 할까?’라고 생각하니

또다시 막막함이 밀려왔다.

거대한 코끼리를

혼자서 움직이려는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아무리 작은 발걸음이라도

일단 내딛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게 바로 나의 ‘변화의 시작’이었다.

가장 먼저 내가 시도한 것은,

내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였다.

그동안 저출산 문제에 대해

막연히 걱정만 하거나,

혹은 비난만 해왔던 나 자신을 반성하며,

이제는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친구들에게, 가족들에게,

심지어는 회사 동료들에게도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요즘 저출산 문제,

정말 심각한 것 같지 않아?”

“너는 혹시 아이 낳는 것에 대해

어떤 고민이 있어?”

처음에는 다들 좀 어색해했다.

마치 금기된 주제를 꺼낸 듯한 반응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내 경험과 내가 느낀 혼란,

그리고 새로운 시각들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누군가를 설득하려기보다는,

그저 나의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놀랍게도,

내 솔직한 이야기에

친구들은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아이를 낳고 싶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망설이는 친구는

나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솔직히 나도 네가 했던 고민이랑 똑같아.

집값도 그렇고, 애 키울 돈도 없고…

가끔은 내가 너무 욕심부리는 건가 싶기도 해.”

나는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녀의 눈빛에서

나와 같은 아픔과 고민을 보았고,

그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다.

아, 정말이지,

공감이라는 것이

이렇게 큰 힘을 가질 수 있구나 싶었다.

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용기를 내어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저출산, 우리 함께 이야기해봐요’ 같은 제목으로.

내 개인적인 경험과 함께,

내가 만났던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익명으로 각색해서 올렸다.

처음에는 악플이 달릴까 봐 걱정했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댓글로 남겨주었다.

“저도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어요.”

“이 글을 읽으니 위로가 되네요.”

“우리만 힘든 게 아니었구나.”

그런 댓글들을 보면서

나는 ‘나 혼자가 아니다’라는

강한 연대감을 느꼈다.

작은 목소리들이 모여

큰 울림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 같은 거였다.

대화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좀 더 적극적으로

‘배움’의 장을 찾아 나섰다.

저출산 관련 강연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으면

주저하지 않고 신청했다.

주말 저녁,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강연장으로 향했다.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다양한 통계와 정책,

그리고 해외 사례들을 접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모든 정보가

당장 해결책이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문제를 더 깊이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관련 서적들도 찾아 읽기 시작했다.

도서관에서 저출산 관련 책들을 빌려 읽고,

밑줄을 긋고,

나의 생각을 메모했다.

어떤 책은 나를 분노하게 만들었고,

어떤 책은 나를 깊은 사색에 잠기게 했다.

책 속의 문장들이

나의 머릿속에서

새로운 질문들을 만들어냈고,

그 질문들은 또다시

나를 더 깊은 탐구로 이끌었다.

일상 속에서의 작은 실천도 시작했다.

회사에서 육아휴직을 쓴 동료가 돌아왔을 때,

나는 먼저 다가가

“혹시 제가 도울 일 없을까요?” 하고 물었다.

그는 처음에는 좀 놀란 듯했지만,

이내 고마워하며

자신이 겪었던 육아의 어려움을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가 업무에 복귀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다.

점심시간에 함께 밥을 먹으면서

아이 이야기, 육아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는 나에게

“네가 이렇게 관심 가져주니 정말 힘이 된다”고 말했다.

그의 말 한마디에

나는 뿌듯함과 함께

작은 보람을 느꼈다.

주변에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에게는

가끔씩 작은 선물을 보내기도 했다.

아이들 간식이나,

엄마들을 위한 커피 쿠폰 같은 것들.

“힘내라!”는 짧은 메시지와 함께.

거창한 것은 아니었지만,

친구들은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네가 이렇게 우리 마음을 알아주니

정말 큰 위로가 된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히는 친구도 있었다.

아, 정말이지,

따뜻한 말 한마디와

작은 관심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새삼 깨달았다.

이러한 작은 행동들을 하면서

나는 내면의 변화를 느꼈다.

처음에는 막연한 두려움과 망설임이 있었지만,

한 걸음씩 나아가면서

점점 더 용기가 생겼다.

누군가를 비난하는 대신

공감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

그리고 나 자신부터

작은 변화를 시도하는 것.

그것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알게 되었다.

더 이상 나는

저출산이라는 거대한 문제 앞에서

무력하게 서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아주 작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물론,

나의 이러한 변화가

당장 한국의 출생률을

끌어올릴 수는 없을 것이다.

여전히 갈 길은 멀고,

문제는 복잡하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나와 같은 작은 시도들이 모이고,

또 다른 사람들의 작은 변화들이 더해진다면,

언젠가는 이 거대한 파도를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이것이 바로

나의 ‘변화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이 시작은

나를 또 다른 실천의 길로 이끌었다.

7장에서 나는,

저출산이라는 거대한 문제 앞에서

더 이상 방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작은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음, 그런데 말이다,

이론적인 깨달음과

실제 삶에 적용하는 것은

정말이지 천지 차이였다.

마치 지도만 보고 여행을 떠나는 것과

직접 길을 걸으며

예상치 못한 언덕과 마주하는 것 같았지.

처음에는 어색하고 힘들었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나의 ‘실천과 적용’이었다.

가장 먼저 나의 변화가 스며든 곳은

바로 ‘직장’이었다.

회사에서 육아휴직을 썼던 동료가

복귀했을 때,

나는 그에게 먼저 다가가

“업무 적응하는 데 힘든 점은 없으세요?” 하고 물었다.

그리고 그의 업무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그도 나도 좀 어색했지만,

점차 우리는

육아와 업무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는 아이가 아파서 조퇴해야 할 때마다

상사에게 눈치를 봐야 하는 현실을 토로했고,

나는 그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공감했다.

나는 작은 시도지만,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이야기할 때

의도적으로 육아 친화적인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요즘 유연근무 제도 괜찮은 것 같아요.

육아하는 분들에게 정말 필요할 것 같아요.”

“회식도 너무 늦게까지 하는 것보다

일찍 끝내고 가족과 시간 보내는 게 좋지 않나요?”

이런 말들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어떤 동료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어떤 동료들은 “그게 되겠어?” 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때로는 나의 이런 발언이

너무 앞서나가는 것처럼 느껴져

혼자 민망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작은 물방울이 바위를 뚫듯이,

이런 작은 시도들이 모여야만

인식이 조금씩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비록 당장 큰 변화가 없더라도,

꾸준히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다음으로 나의 변화가 시작된 곳은

바로 ‘가정’이었다.

나는 배우자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건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지만,

만약 아이를 낳게 된다면

육아와 가사를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그동안 우리는

가사 분담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해본 적이 없었다.

대부분의 집안일은

내가 도맡아 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6장에서 깨달았듯이,

‘독박 육아’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배우자에게

남성 육아의 중요성과

공동 육아의 필요성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처음에는 배우자도 좀 당황하는 듯했다.

“갑자기 왜 그래?” 하는 반응이었지.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나의 생각과 내가 만났던

육아휴직 동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다행히 배우자는

나의 진심을 이해해주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가사 분담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고,

서로의 역할을 재조정했다.

물론 처음에는 어색하고

실수도 많았지만,

점차 함께 집안일을 하고

서로의 수고를 인정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의 관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고,

‘만약 아이가 생긴다면

우리는 함께 잘 키울 수 있을 거야’라는

작은 희망을 품게 했다.

나는 지역 사회에서도

작은 움직임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동네 육아 커뮤니티에 가입해서

온라인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눈팅만 하다가,

점차 육아 관련 정보나

지역 소식에 댓글을 달고

나의 의견을 공유했다.

한 번은

‘아이들이 뛰어놀 공간이 부족하다’는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구청에 건의하는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비록 내가 직접 아이를 키우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이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드는 것이

결국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나는 ‘나 혼자가 아니다’라는

강한 연대감을 다시 한번 느꼈다.

작은 목소리들이 모여

공동체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다.

개인적인 습관도 변화시켰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저출산 관련 뉴스나 칼럼을 찾아 읽는 것이

나의 새로운 루틴이 되었다.

관련 다큐멘터리가 방영되면

빼놓지 않고 시청했고,

흥미로운 통계 자료를 발견하면

스크랩해서 따로 정리했다.

때로는 이런 꾸준함이

지루하거나 힘들 때도 있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회의감이 들 때도 있었지.

하지만 나는 알았다.

이 문제가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 과정 자체가

나를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된다는 것을.

물론,

모든 실천이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회사에서 회식 문화 개선을 제안했을 때,

“젊은 사람이 너무 유난 떠는 거 아니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나의 의견을 피력했을 때,

“애도 안 낳는 사람이 뭘 안다고 떠드냐”는

악성 댓글에 상처받기도 했다.

배우자와 가사 분담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입장 차이로 다투기도 했다.

때로는 기대했던 만큼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아

실망하고 좌절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깨달았다.

이러한 시행착오와 좌절이

오히려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실패를 통해 나는

더욱 겸손해졌고,

더욱 인내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문제가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지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포기할 수 없었다.

이것은 더 이상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우리 모두의 문제였으니까.

나는 여전히

저출산 문제의 완벽한 해결책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나의 작은 실천들이 모이고,

또 다른 사람들의 노력이 더해진다면,

언젠가는 이 거대한 파도를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이러한 실천과 적용의 과정은

나를 계속해서 성장시켰고,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1장에서 나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나의 개인적인 결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이야기했다.

그때의 나는

그저 나 혼자만의 문제라고 생각했지.

2장에서는 그 문제가

나만의 것이 아님을 깨닫고

사회 전체의 그림자임을 보았다.

그리고 3장에서는

절망 속에서 작은 희망의 불씨를 찾았고,

4장에서는 그 불씨가

다시금 거대한 혼란과 갈등 속으로

나를 밀어 넣는 것을 경험했다.

5장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나의 시야를 넓혀주었고,

6장에서는 그 모든 경험들이 모여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선물했다.

7장과 8장에서는

그 새로운 시각을 바탕으로

작은 실천들을 시작했고,

때로는 넘어지고 좌절하면서도

꾸준히 나아가는 법을 배웠다.

음, 정말이지,

긴 여정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이 모든 과정을 거쳐

‘현재의 나’로 서 있다.

여전히 저출산 문제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숙제 중 하나이고,

나는 그 완벽한 해결책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나는 더 이상

그 문제 앞에서

무력하게 절망하고만 있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의 나는,

저출산 문제를

단순히 숫자로만 보지 않는다.

그것은 통계 뒤에 숨겨진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임을 안다.

아이를 낳고 싶어도 낳을 수 없는 이들의 아픔,

낳지 않기로 선택한 이들의 고뇌,

아이를 낳아 키우며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눈물.

이 모든 삶의 조각들이 모여

지금의 저출산이라는 그림을 만들고 있음을

나는 이제 이해한다.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특정 집단의 잘못으로 돌리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낸 현실이자,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였다.

나는 여전히

나의 자리에서

작은 실천들을 이어가고 있다.

회사에서 육아 친화적인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배우자와 함께 가사와 육아의 의미를 되새긴다.

지역 사회의 작은 움직임에도 귀 기울이고,

온라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려 애쓴다.

물론, 나의 이런 작은 노력들이

당장 드라마틱한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다.

때로는 지치고 힘들 때도 있고,

‘이게 다 무슨 소용일까’ 하는

회의감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러한 꾸준함이

결국은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것을.

작은 물방울이 모여

강을 이루고 바다를 만들듯이 말이다.

나는 이 여정 속에서

가장 큰 선물을 받았다.

바로 ‘희망’이라는 선물이다.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나는 분명히 희망을 본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작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며

연대하려는 마음들이 모인다면,

우리는 분명히

이 거대한 파도를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나 혼자가 아니다’라는

이 단순한 깨달음이

나에게는 가장 큰 위로이자

가장 강력한 동기가 되었다.

저출산 문제를 탐구하고 실천하는 과정은

나 자신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나는 더 넓은 시야를 가지게 되었고,

타인의 삶에 깊이 공감하는 법을 배웠다.

사회적 책임감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고,

나의 작은 행동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이 모든 과정은

나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만들었다.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나의 선택이

나를 이토록 깊은 성찰의 길로 이끌 줄이야.

정말이지, 인생은 알 수 없는 일투성이인 것 같다.

책의 제목처럼,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현재의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이것은 단순히

누구 하나의 잘못이 아니었다.

경제가 발전하고

개인의 가치관이 다양해지면서,

그리고 사회 구조가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복합적으로 발생한 현상이었다.

과거의 잣대로 현재를 재단하고

비난하는 대신,

이제는 우리가

이 복잡한 현실을 인정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할 때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에서 멈추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완벽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하고 싶다.

저출산 문제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

우리 모두의 삶과

미래가 걸린 문제라는 것.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뿐만 아니라,

우리 각자의 작은 관심과 실천,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를 향한 따뜻한 공감과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

이제 이 책을 덮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

당신은 당신의 자리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좋다.

작은 관심,

따뜻한 말 한마디,

혹은 편견 없는 시선.

그 모든 것이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우리 함께,

이 거대한 파도를 넘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함께라면,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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